2021

이제 가서 네 냄새 묻히고 살아. 별이가 어딘가에 뺨을 부빌 때마다 이전 집 집사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내 차 앞에서 별이를 그쪽 이동장에서 꺼내 내 이동장에 옮기면서 그는 그렇게 말했다. 별이와 사는 동안에는 계속 기억이 날 것 같다.

그를 데려온 것만으로 올 한해 사건사고는 끝이어도 상관 없는데 생각해 보니 일이 많았다. 결리는 어깨를 치료하려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가 심장이 커보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흔치 않은 심장내과를 찾아가 기계를 하루 동안 붙이는 등 검사를 받았다.

한편 백신 1차 접종을 받고 나서는 어지럼증이 심하게 몰려와 이대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굉음을 겪으며 엠알아이를 찍고 난 뒤 전정신경염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심장과 뇌를 본의 아니게 점검하고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일은 잘 모르겠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했으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서 어긋난 경우가 좀 있다. 그런저런 일들로 마음 고생을 만만치 않게 했으나 연말로 오면서 그럭저럭 풀려 2021년의 마지막 날, 마음은 꽤 평온하다.

2021년은 여러모로 2020년을 다시 산 느낌이었다. 역시 내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불만도 품지 않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2022년도 2021년을 다시 사는 느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어쩌면 좋을까.

크리스마스

오전에 잠깐 나갔다 와서 계속 뜨개를 했다. 냉철하게 판단해서 싹수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잡생각을 안 하게 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발견해서 그냥 한다. 왠지 마음이 편해서 낮잠을 아주 달게 잤다. 오늘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했다. 다른 날도 아니고 꼭 오늘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했다. 많은 마음을 준비해 두었다가 전부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호로록 타버리는 꼴을 홀가분하게 바라보았다. 타라, 마음아. 타올라라. 활활 타올라 재도 한 점 남기지 말고 모조리 사라져 버려라. 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왜 의지하겠다고 기대를 품고 마음을 주고 애를 닳고 속을 상하고.

공중파 뉴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고 나오는 길에 메일을 확인했다. 공중파 뉴스의 조연출이라면서 뉴스 거리의 “자문”을 구한다고 했다. 질문지까지 살뜰하게 첨부된 메일에 보수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바로 문자를 보냈다. 보수는 있습니까? 없다고 답이 왔다. 저는 보수 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나의 분노가 폭발했다. 매우 불쾌하네요 피디님은 월급 안 받고 일하십니까? 저같은 사람들이 보수 없이 제공한 노동으로 월급 받으시는 겁니까? 연락하시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세요.

공중파 뉴스 할애비래도 홍보 효과 같은 건 없으며 설사 자문료가 책정된다고 하더라도 일이십 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나는, 기껏 공짜 노동 섭외를 위한 연락으로 오늘의 작은 행복을 무참히 깨트려 버리는 사람들의 무신경함에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이번 주에 매우 즐겁고 편안하게 쉬고 있었으며 오늘은 영화도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간식으로 먹을 만두와 저녁으로 먹을 순댓국을 싸들고 집으로 가고 있던 참이었다. 이렇게 자잘한 행복에 실낱같이 매달려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 공짜 노동을 제공하랍시고 연락을 해서 그마저 깨버리겠다고? 나는 이런 인간들을 이제 용서할 수 없다. 갈수록 정말 인간이 너무나도 싫어진다.

마감을 끝내고 잠깐 잤는데 꿈을 꾸었다. 야쿠자에게 쫓겨 계속 도망쳐 다니는 꿈이었다. 많은 것들에게 쫓겨 다녔지만 야쿠자는 처음인 것 같아 신선했다. 유니클로 JW 앤더슨 콜라보의 비니가 배송됐는데 우려했던 대로 작았다. 비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큰 내 머리가 잘못한 거다. 신속히 반품을 시키고 내일 나가는 김에 뜨개방에 들러볼까 생각중이다. 올해는 유난히 털모자가 쓰고 싶다. 집에서도 쓰고 있으면 따뜻해서 머리가 더 잘 돌아가지 않을까.

기억의 봉인

12월이 되자마자(카드 결제가 넘어가자마자) 외장하드를 하나 더 사서 타임머신 백업을 돌리고 있다. 컴퓨터의 내장 저장공간이 3테라에서 1테라로 줄어들면서 데이터의 일부는 클라우드로, 일부는 외장하드로 옮겼는데 기억이 재배치된 느낌이다. 비물리적 데이터를 저장장치에 담아두면 검색에 의해 얼마든지 필요한 걸 그때그때 찾아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는 항상 일종의 물리적(사실은 이 또한 비물리적이지만) 저장체계가 그 사이에 개입하기를 원한다. 최근 매체에서도 보도한 것처럼 정보의 위치나 위계 등을 ‘폴더’의 단위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습성도 이제 구세대의 유물이라며.

저장장치를 교체하고 새로 OS를 깔았더니 컴퓨터가 스스로를 새 것으로 인식하는 바람에 타임머신용과 일반 데이터용 외장하드를 하나씩 사야만 했다. 예전 타임머신의 하드를 포맷시키고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럼 그 지점까지의 데이터를 잃게 되므로 돈이 아깝지만 새로 하드를 하나 더 사고 이전의 타임머신에 담긴 기억을 봉인시켰다. 한 달째 컴퓨터를 복구하면서 그래서 내부 저장장치게 담겨 있던 데이터 가운데 뭐가 중요한가 생각해 보았는데, 심심풀이로 만든 노래의 거라지밴드 파일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게는 잃을 수 없는 자료이다.

생계의 핵심인 문서 파일들이야 원체 용량이 크지 않으므로 클라우드에 올려 놓고 백업 걱정 같은 거 내려 놓은지가 7~8년이지만 영상 등의 데이터는 아직도 ‘로컬’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그냥 가끔 비디오 찍은 아마추어 가운데 아마추어도 이럴진대 영상이 업인 사람들은 대체 데이터 관리에 얼마 만큼의 자산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홈트의 생활화를 위해 발버둥치는 가운데, 오늘은 링피트를 30분 했다. 스무디 만드는 믹서를 찾으러 들어갔는데 복근 싸움에서 에너지가 다 떨어져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를 보충하려면 스무디를 먹어야 하는데 믹서가 없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계속 돌다가 포기할 것 같다. 배에 링콘을 대고 누르면 미끄러져서 복근 싸움에서 불리하다.

작년 이맘때 있었던 일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나는 강남으로 찾아가 출판사의 새 편집장을 만났다. 그해 봄, 어찌된 영문인지 편집장이 갑자기 나가면서 내부 승진이 이루어졌으니 새 편집장도 구면이었다. 아무래도 편집장이 바뀌었으니 이미 낸 책과 전 편집장이 나가기 전까지 앞으로 내기로 한 책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지만 당장 급한 건 없었기에 나는 먼저 메일을 보내 6개월 뒤 쯤, 연말에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서 출판사 앞의 어느 카페에서 만났을 때, 새 편집장은 내가 왜 만나자고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고 말했다. 편집장이 바뀌는 시점에서 내 책을 더 이상 내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고, 이를 전 편집장에게 말하고 나가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전 편집장은 이미 6개월 전 이미 결정되었던 사항을 나에게 전달하지 않고 그냥 퇴사해 버린 것이었다. 그와 퇴사 직전까지 책과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어떤 구석에도 내 책을 출판사가 더 이상 내지 않겠다는 낌새는 알아챌 수가 없었다. 한편 새 편집장은 이미 나에게 이야기가 전달된 줄 알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내가 만나자고 하니 영문을 몰랐던 것이다. 서로 할 말도 없고 더 해서, 커피를 다 마시고 우리는 헤어졌다.

나머지 이야기는 하면 내가 구차해져서 일단 그만 쓰겠다. 하여간 작년 이맘때 그런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