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빵

영상을 보고 생각했다. 외롭지 않을까? 영상의 제빵사는 도쿄에서 게임회사를 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1인 빵집을 열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짬짬이 살림을 하며 빵을 굽는데 판매 준비에만 9시간이 걸린다. 판매에 드는 시간은 별도니까 하루에 15시간 정도 노동을 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빵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할 환경은 아니라서 정말 계속 빵과 가게에만 매여 있는 셈이다. 저런 삶이 괜찮을까? 라고 궁금해졌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딱히 다르게 사는 것도 아니고 저 제빵사는 가족도 있다. 게다가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돌아왔다면 이미 이렇게 살 마음의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 가운데…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 왠지 부러웠다. 물론 나에게도 고향이 없는 것은 아니고 물리적인 거리는 역대로 가장 멀어 보이지만 애초에 심정적인 거리가 가까워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갈 곳이 있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제3의 직업 또는 생계수단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빵을 구우면 참 좋을 것 같긴 하다… 영상의 빵들이 특히 맛있어 보여 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채널에서 소개하는 빵들 상당수가 굽는 사람의 즐거움에 맞춰져 있는 듯 보이는데 저 빵들은 드물게 안 그랬다.

 

사건의 상호성

그 글을 읽고 나도 처음에는 북받쳐 올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식으면서 생각했다. 나라면 저 일을 글로 쓸까 쓰지 않을까? 글을 쓰는 사람은 대략 안다. 어떤 소재와 시각을 버무리면 어떤 반응이 나오리라는 것을. 말하자면 ‘각’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도의 소재라면 이미 알고 쓴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글이 나가면 반응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쓸 수 없어진다. 타인의 사생활 가운데서도 정수인데다가 이미 반응을 알 것 같은 글은 힘이 들어가서 편하게 쓸 수가 없어진다.

물론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게 아니니 그렇게 힘이 들어가 쓰기가 편하지 않더라도 요리조리 피해가며 다 쓸 수 있기는 하다. 읽는 사람도 눈치채지 못하게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내게는 너무 그렇다. 그래서 내가 사람 이야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 모든 사건에는 상호성이 작용한다. 사건 한 쪽에 내가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상대방이 있다. 물론 외출했다가 발을 헛디뎌 자빠지는 사건처럼 상호성이 없는 사건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건은 대체로 상호성이 강하다.

그래서 사람 이야기를 쓰려 하지 않고, 그탓에 인간미가 없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으로서 고민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에게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는 글을 써서 털어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사건들이 있다. 하지만 상호성이 내 발목을 잡는다. 싫은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존중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예 쓰지 않으려 한다. 무엇이 잘 팔리는지 알고 있더라도 꼭 그것을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어제도 나는 그 글을 읽고 고민했다. 역시 저렇게 써야 더 잘 팔리나? 물론 그가 일부러 그 이야기를 글로 쓰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그는 이 슬픈 일을 글로 쓰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걸 믿어 의심치는 않지만… 죽음? 꼭 쓰거나 말해야 사건이 존재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최악이다. 사람에게는 상상력이라는 게 있다.

이사 전야

이제 그만.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일거리는 계속 나올 것이다. 이사갈 집의 가구 배치에 대해서도 아직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만. 내일이 오면 또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렇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이게 되지 않아서 지난 1년 동안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었다. 사실 최악과 최선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상태와 단계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삶과 그 속에서 내리는 온갖 결정과 등은 그 무수히 많은 단계 어디쯤에 놓인다. 그런데 ‘어떻게든 될 것이다’가 안 되면 최선 아니면 최악만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게 된다. 아니, 실제로는 최악만이 유일한 선택지라 여겨 버린다.

그렇게만 선택하는 수렁에서 벗어난 것 같으므로 이 상태를 좀 더 즐기기로 했다. 이사 전날, 결국 모든 일은 예상대로 벌어졌다. 대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연장되었고 내가 받아 나가야 하는 돈도 문제 없이 들어올 것으로 확정되었다. 8시쯤 짐을 빼러 온다는 확인 전화도 받았다. 이사갈 집에서 짐을 부리기 위한 주차 문제도 해결된 것 같다.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다. 4년 전처럼 혼자이지만 이사를 마치고 병원에 찾아가야 할 것 같은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온갖 우울했던 예전 이사들의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순간순간 문득 떠오르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넘겨버린다. 언제나처럼 깊이 곱씹지 않는다. 하, 그런 일도 있었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래,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동네에서 무엇을 마지막으로 할까 망설이다가 해가 지기 전에 산책을 잠시 했다. 이곳에서 살았던 4년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과감한 선택을 했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