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일거리는 계속 나올 것이다. 이사갈 집의 가구 배치에 대해서도 아직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만. 내일이 오면 또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렇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이게 되지 않아서 지난 1년 동안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었다. 사실 최악과 최선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상태와 단계들이 놓여 있다. 그리고 삶과 그 속에서 내리는 온갖 결정과 등은 그 무수히 많은 단계 어디쯤에 놓인다. 그런데 ‘어떻게든 될 것이다’가 안 되면 최선 아니면 최악만이 벌어질 거라 생각하게 된다. 아니, 실제로는 최악만이 유일한 선택지라 여겨 버린다.
그렇게만 선택하는 수렁에서 벗어난 것 같으므로 이 상태를 좀 더 즐기기로 했다. 이사 전날, 결국 모든 일은 예상대로 벌어졌다. 대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연장되었고 내가 받아 나가야 하는 돈도 문제 없이 들어올 것으로 확정되었다. 8시쯤 짐을 빼러 온다는 확인 전화도 받았다. 이사갈 집에서 짐을 부리기 위한 주차 문제도 해결된 것 같다. 전반적인 컨디션도 좋다. 4년 전처럼 혼자이지만 이사를 마치고 병원에 찾아가야 할 것 같은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온갖 우울했던 예전 이사들의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순간순간 문득 떠오르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넘겨버린다. 언제나처럼 깊이 곱씹지 않는다. 하, 그런 일도 있었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간다.
그래,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동네에서 무엇을 마지막으로 할까 망설이다가 해가 지기 전에 산책을 잠시 했다. 이곳에서 살았던 4년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과감한 선택을 했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