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다. 어제 아침에 목이 너무 따가워서 오후에 병원에 갔는데 심각한 것은 아니라며 약을 사흘치 처방 받았다. 열심히 먹고 있긴 한데 어째 큰 것이 다가오는 것 같다. 나 지금 아프면 안된다…
Month: February 2025
독립 사건과 종속 사건
어제는 당근케이크를 구웠는데 오븐에 넣어 40분을 꽉 채워 돌린 뒤에야 섞이지 않고 덩그러니 남아 있는 밀가루 사발을 보았다. 이십 년 가정 제과제빵 경력에서 해본 적이 없는 실수였다. 부랴부랴 익지 않은 당근계란찜을 꺼내 믹서에 다시 넣고 밀가루를 섞어 다시 팬에 담아 구웠는데… 먹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부풀지 않은, 그래서 누군가에게 주기는 뭐한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이럴 때 나는 모든 사건이 독립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고 종속적이라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버릇이 있다. 말하자면 이것이 어떤 더 큰 나쁜 일의 전조나 일부일 것이며 나에게는 더 많은 불행히 기다리고 있다…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방송국 가는 길에 뻗어버린 구급차로 도로가 막혀 살짝 마음을 졸여야 했었던 일도 같은 연장선 위에 놓고 생각했다. 아,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나?
그것은 아마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들이 오랫동안 내려지지 않고 시간을 끌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일보 연재인데 지금 현재가 지난 연재에 이어 또 100화를 달성하게 된 가운데 (말하기 뭐한 내부 사정-편하게 짐작하시오) 하여 결정이 안 내려지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그만 쓰라는 통보를 받았다. 난 사실 다음을 위해 이미 한 삼사 개월 전부터 또 새로운 기획, 어쩌면 지난 200화 동안 해온 것보다 더 재미있을 만한 것을 준비해서 안은 물론 샘플까지 써서 주기는 했으나… 내가 너무 오래 썼다는 지적이 사실 틀린 것은 아니다.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내가 뭔가 교수라거나 직함을 가지고 있더라면 이게 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래서 내가 일을 주는 갑님을 원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설사 진짜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사실 ‘아 00가 되었어야 하는데, 직함을 가지고 있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은 예전에도 해본 적이 없고 요즘은 더 하지 않는다. 그저 ‘아, 직함도 뭣도 없는 인간이 오래도 썼구나 하하하’라고 웃고 넘어갈 뿐이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직함 같은 거 바라지도 않고.
연재가 끝나서 아쉬운 건 순전히 먹고 살기 힘든 프리랜서의 현실 때문인데… 그거야 뭐 언제나 할 수 밖에 없는, 팔자 같은 걱정이니 그런가보다 할 수 밖에 없다. 세 번째 기획안은 재미있는 것이니 다른 데에 찔러 보면 되는 것이고, 나는 올해 마음 속에 찬 물에 맞춰 노 젓는 일을 하면 된다. 쉰다고 생각해도 나쁠 것은 없어 보이고. 당근케이크는 다시 구우면 된다. 강판에 당근 가는 게 조금 귀찮지만 15분이면 반죽을 오븐에 넣을 수 있다. 레시피도 다 외웠다.
다른 하나는 작년 10월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다음 책인데…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두 달 전이다.
9개월 동안의 헛수고 (1)
사람을 실제로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광화문 교보에 들러 연필 셋트와 작은 스케치북 그리고 지우개를 샀다. 대학 때 미술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교수에게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고 그래서(대략 25년쯤이다) 주섬주섬 그런 것들을 샀다. 다른 농도 심을 끼운 연필 여섯 자루 한 셋트(스태들러)와 나머지였다.
그걸 주면서 나는 그랬다. 그림 어쩌구 이야기를 하기에 사왔다. 하지만 딱히 뭘 하라고 산 건 아니다. 하루에 선 하나라고 그어보면 좋고 아니면 그냥 눈에 띄는 데다 두고 가끔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뭐라도 하고 싶어질지 어찌 알겠느냐고. 그는 마치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듯 아무런 조건도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당연히 없다. 뭐 그림을 그려서 보여줄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난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샀을 뿐이라고 그랬다. 나는 사소한 것들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서 내가 들인 자원의 총량에 비해 받는 사람이 즐거울 수 있는 선물 하기를 좋아한다. 아니 물론 그렇다고 맨날 그런 걸로만 퉁치려 드는 사람은 아니고…
집에 오면서 연필깎이를 까먹었다는 생각을 했다.
관계가 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사소하디 사소한 불편함
또 마음이 와장창 깨져서 금요일에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런 와중에 메일을 받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오늘은 평소보다 뜨개를 좀 오래하고 그냥 빈 속으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본의 아니게 혈당이 치솟는 탄수화물을 늦은 점심으로 먹었다. 앉은 식탁의 양 옆으로 각각 칠십대와 삼십대로 보이는 커플이 앉아 있었다. 칠십대 가운데 남자가 술에 불콰해져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삼십대 가운데는 여자가 음식이 나오자 덜어 남자에게 챙겨주었다.
말하자면 한쪽은 내 과거 같고 한쪽은 내 미래 같았는데 둘 다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 나는 집요하게 나에게 답이 나올 때까지 캐묻는 버릇이 있어서 밥을 먹으며 속으로 쪼아댔는데 그냥 관계가 싫은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사람들이 뭘 해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기 크게 받았다기 보다 그냥 내가 누군가와 둘이 있는 그림을 그려보니 그다지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이다.
좀 더 파고 들어가자면 아마도 절차에 지친 것이리라. 양 옆의 커플들이 하는 것처럼 만나서 고민 끝에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또 커피든 뭐든 마시러 가서 또 이야기를 하고… 그 모든 걸 하기 위해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또 그 뒤에는 어디로 자리를 옮겨 무엇을 마실지 절차에 대해 고민하기가 싫어진 것이다. 이건 그냥 최근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현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이를 먹었으므로 자연스레 시장(?)에서 아웃되는 것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시킨 음식이 나왔는데 이게 사실 바로 먹기엔 좀 뜨거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어대며 어렵사리 폰을 들여다 보며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며 아, 관계가 되려면 저런 사소하디 사소한 불편함을 좀 견뎌야 되는데 내가 지금 그걸 매우 하고 싫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보면 하기 싫을만 하다. 그냥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매우 하기 싫다.
무한 눈치를 보고 없는 행간을 읽어대는 성격에 직업(있잖아요, 그거)까지 겹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밥이고 차고 뭐고 다 내가 찾아야 되는 판국이 되어 버려서 나는 땡벌땡벌 지쳤다. 뒤집어 말하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유지하고 싶은 관계 혹은 그 잠재력을 가진 사람을 한참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말도 되겠다. 다시 한번,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시장에서의 자연스러운 퇴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라도 지금 딱히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