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미터

절교미터는 세월을 두고 천천히 올라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임계점에 이르면 정신의 대폭발 같은 게 일어나고 머릿속은 빠르게 백색왜성으로 식어간다. 나는 이 과정을 항상 미용실을 옮기는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다. 어느날 갑자기, 늘 똑같았던 같은 머리가 달라 보이니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용실이라 옮기면 되지만 인간 관계는 정확하게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한편 순식간에 속에서 와장창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공식적으로는 술에 취해서 나에게 오이를 던져 절교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선배들이랑 터키탕 간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한 고등학교 동창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놈도 나도 잔뜩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 술기운 사이로도 ‘터키탕’이라는 세 음절은 매우 또렷하게 들어왔고 나는 그 시점에서 마음의 셧터를 내렸다. 늘 ‘과업은 대충, 술은 잔뜩’이라는 만트라로 대학을 다녔기에 나의 절교 미터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부임지로 놀러갔던 친한 형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기숙사방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 잠을 못 자서 도망친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삼겹살을 구워 먹고 건실하게 놀다가 돌연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렀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면 말을 못하겠지만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럴 일은 없었다(순환논리인데?).

하여간 나는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으로 그 형의 기숙사방에 돌아갔는데 심난한데다가 정말 코를 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짐을 챙겨 나와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잘만한 곳을 찾아보았는데 없어서 그대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 새벽까지 벤치에 죽은 듯 앉아 있다가 첫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이를 먹을 수록 어떤 관계든 절교 선언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가 나에게 연락을 할 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그에게 연락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절교 선언이란 말하자면 나에게 배수진 같은 것이다. 상대방에게 고립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고립이 필요하기에 절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