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부지런히 움직였다. 계란을 삶으면서 양배추 한 통을 썰어 절이는 가운데 커피를 내렸다. 세탁기를 돌리고 순두부가 먹고 싶어져 마트에 갔다왔다. 찌개를 끓이고 양배추 시오콘부 무침과 오랫동안 먹고 싶었던 감자 계란 샐러드를 만들어 저속노화밥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고구마를 오븐에 굽는 가운데 부엌을 치우고 재활용 쓰레기를 한바탕 정리하고 집을 쓸고 닦은 뒤 고양이와 인간의 화장실을 각각 청소하고 케틀벨을 잠깐 하고 샤워를 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여느 일요일 두 배 수준의 가사노동을 했다. 위기의식 때문인 걸까? 평소보다 몸이 훨씬 더 잘 움직여졌다. 이런 상황이 싫다. 사실은 이럴 상태가 아닌데 일종의 시급함을 느껴 나를 짜내기는 상황이 싫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해야만 하는, 정말로 시급한 상황일 수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만만치 않은 몫의 불운에 시달려 왔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